“저는 남아공에서 도시 빈민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최빈민들에게 정기적으로 빵과 식료품을 나누고 있지요. 남아공에 둥지를 튼 탄자니아 난민들은 기찻길 옆에서 지내는데 제가 유일한 방문자입니다. 아내는 여성들이 직업을 가지도록 그룹을 만들어 지도하며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칩니다.”

변동식 선교사 (남아공)

  • 중생경험 소개

저는 62년생으로 베이비 붐 세대의 끄트머리 주자로 3남 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평양 능수버들 아래에서 동네마을 어귀를 지키던 아버지가 지나가던 미군 지프차에 얼떨결에 태워져서 서울 까지 와 보니 그것이 1.4 후퇴 였단다. 서울에 아무 연고가 없이 떨어진 선친은 돈암동 토배기 울 어머니와 결혼을 하고 근근이 살아갈 무렵, 폐병에 걸리신 선친은 제 나이 6살 때 홍제동 산동네에 쓰러져 가는 거푸집 하나 남겨놓고 무엇이 그리도 바쁘셨던지 머나먼 길을 떠나셨다. 그때부터 우리집 가난은 융단폭격처럼 쏟아졌고 특히, 막내인 내게는 정말로 가혹하리 만큼 비참 하였다. 연세대학 뒷산 너머에 우리집이 있었는데 후에 철거가 되어 지금은 안산이 되어버린 곳이 나의 고향이었다. 매일 오르던 그 산에는 정말 먹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고 내게는 4계절이 보릿고개 였다.

영양실조가 너무 심하여 빈혈에 야맹증, 그리고 치질도 심하여 나중엔 피부세포가 무너져 내리는, 거지 나사로가 앓았다는 헌데에 걸렸었다는 것을 최근 에야 깨닫게 되었는데 그때는 아무도 나를 돌보아 주는 이가 없었다.

그러던 초등학교 3학년때, 우리 동네에 새로 이사 온 친구가 교회에 가면 눈깔사탕 준다는 말에 현혹되어 교회를 처음 가게 되었다. 울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기에 난, 이 세상에 더 이상   아버지가 없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며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고 친절하신 주일학교 샘이 가르쳐 주셔서 그때 처음으로 기도한 내용이, “하나님 배가 고파요! 밥 좀 주세요!”였다.  그 당시 먹고 살 것도 없는 시절이었으니 육성회비를 못 내서 학교에선 조석으로 불려가   허구한 날 복도에서 무릎 끓고 벌을 받기 일쑤 였는데 반하여 주일학교 샘은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어서  아무 의심없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어 주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어 주심을 믿고 그동안 못 불렀던 아버지를 마치 육신의 아버지인양 하나님을 부르며 날마다 기도하게 되었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나의 기도를 잊지 않고 모두 들어 주셨다.

  • 사역 (목회/선교) 소명 소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에 기쁨과 평안만 있을 줄 알았던 내게

많은 어려움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결혼한 후, 집사가 되어 교회의 총 예산 심의와 가결을 하는 공동의회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참석하게 되면서 신앙생활이 송두리체 흔들리기 시작 하였다. 당시, 교회예산 5천만원에 선교구제비를 20만원으로 책정하려 하기에 깜짝 놀라서 목사님께 질문을 하였다.

“목사님! 교회의 사명이 선교와 구제라고 배웠으며 저도 주일학교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그리 가르쳐 왔는데 선교구제비가 너무 작은 것 아닙니까?” 순간적으로 당황하신 목사님은 잘못을 시인하고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이후부터 나를 왕따 시켜 버렸고 나의 신앙생활은 거친 파도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과연 어디에 계신 걸까?’ 홀로 질문하며 방황하는 나에게 주님은 제자훈련으로 유명한 사랑의교회로 이끌어 주셔서 주님의 말씀을 실제의 삶 속에서 어떡해 적용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배우게 되었고, 그 무렵에 중국 연변과기대를 위한 후원회 총무를 맡아 그분들의 헌신된 기도편지로 읽고 선교사님들의 삶을 처음 접하게 되었으며 평신도전문인 훈련원에서(GPTI) 선교훈련과정을 배워가던 중에 유병국 선교사님께서 “선교지에서는 주방에서 감자만이라도 깎을 줄 아는 사람도 필요하다.” 라는 말이 귀에 꽂히면서 16년간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던지고 WEC 선교사로 자원하게 되었다.

3) 현재 사역소개

어릴 적 그렇게 가난하게 살아서 피하고만 싶었던 가난을 아프리카 남아공, 더반이라는 도시에서 또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도시빈민들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통감하는 나에게 주님은 네가 받고 싶어 하였던 돌봄을 저들에게 베풀라고 하시기에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과 다리 밑에서 집단으로 거주하는 탄자니아 난민청년들에게 음식과 옷, 저들의 필요를 나누고 있으며 흑인마을 어린이들과 함께 성경을 읽으며 복음을 전하고 저들의 어머니들이 자립을 할 수 있게 자기사업을 하도록 가르치며 섬기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 소개

18년째 도시빈민 구제사역을 하여 오면서 물고기를 나눠 주는 일은 먹고 나면 여전히 배가 고픈 현실을 목도하면서 영육 간에 균형 잡힌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어머니들의 모임인 시자맘 (구직자 어머니 모임) 회원들에게 저들이 할 수 있는 자그마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물건들과 자금을 빌려주고 있다. 남성들에게도 정비기술학교를 열어 정비기술을 가르칠 소망을 갖고 있는데 몇 년이 지났지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지 않았는데 이번에 평소 교제하고 있는 레스트랑 사장님으로부터 사역지 사람들을 채용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시자맘 엄마들과 그 자녀들 14명의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 사태 전까지 이 레스트랑에서 토요일마다 직원들 대상으로 예배를 인도해 왔었는데 현재는 예배는 드리지 못하지만 사장님과 직원들과는 계속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 기도제목
  1. 남아공의 코로나 영향으로 말미암은 경제침체로 강력범죄가 끊이질 않고 있는데 코로나를 물리쳐 주시며 정직한 정부가 세워 지도록
  2. 시자맘 엄마들 세 그룹에 사업자금을 빌려주었는데 병아리를 잘 키우며 달걀과 야채 판매 사업도 성실하게 하도록
  3. 현지 사람들이 마스크를 거의 착용을 하지 않는데 우리 부부를 코로나 위험으로 부터 지켜 주시도록
  4. 11월 한국을 방문하여 무릎과 치아 치료를 받으며 후원교회를 방문할 계획인데 만남의 축복을 주시도록
  5. 큰 아들네 가정에 새 직장 주심에 감사드리며 큰 며느리도 한국방문 하여 손녀가 수술을 받을 계획인데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시며 둘째, 셋째 아들 가정에도 날마다 은혜의 날개아래 거하며 살아 가도록

끝까지 관심을 갖고 읽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