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을 찾아서… 김주표 목사(뉴질랜드 오클랜드 감사선교교회)
- 중생 경험 소개
한국에서의 군생활(학사장교 대위로 제대)과 직장생활의 모든 경험들을 뒤로한 채, 1996년4월20일 뉴질랜드 땅을 처음으로 밟았습니다. 우리 부부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빈손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이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믿지 않았던 우리 가정은 연고가 전혀없는 이곳에서 교회 성도들의 도움으로 잘정착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교회로 인도되었습니다. 교회 뜰만 밟고 다니다가 드디어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나던 무렵 새벽기도를 통해서 회개하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건축관련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는데 일해준 개발업자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 기도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에 새벽기도를 시작하게 된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이후 삶의 변화는 내가 알고, 교회가 알고, 모든 이웃들이 알게되는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그리고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 사역 소명 소개
40대 후반의 나이에 부르심에 순종한 저의 관심사는 선교였습니다. 그래서 파사데나에 있는 풀러 선교대학원에 입학해서 신학을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는 신앙에 대한 의문을 푸는 시기였습니다. 다양한 교단의 사역자들과 다양한 선교지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과 교제하면서 다양한 신앙의 모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도서관과 기숙사를 오가며 2년을 보내는 동안 세상속의 선교적교회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마음 가운데 교회 개척에 대한 열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선교학 석사과정(M.A.)을 졸업하면서 월드미션대학교 목회학 석사과정(M.Div)에 편입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LA 코리아타운 지역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아내도 합류했습니다. 근처 교회에 전도사로 사역하면서 LA의 숨겨진 모습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딜가나 보이는 홈리스들이었습니다. 저와 아내가 LA 다운타운에 나갔다가 넘쳐나는 홈리스들을 보고는 충격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월드미션대학교에서의 학업은 이론과 현장이 함께하는 환경속에서 사명을 찾아가는 시기였습니다. 풀러 신학교에서의 선교적 영성과 흐름을 같이하는 월드미션 대학교에서의 학업은 후에 뉴질랜드에서 교회를 개척하는데 실제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 현재 사역 소개
1) 홈리스사역입니다.
홈리스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은 미국에서의 경험 때문입니다. LA에서 교회를 오가는 길거리에서 또 전철 속에서 수많은 홈리스들을 보았습니다. 도대체 세계 최고의 강대국인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마음 속에 질문을 달고 살았습니다.
뉴질랜드로 돌아와 홈리스 사역을 하시는 집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홈리스 사역에 동참해서 8개월간 섬겼습니다. 그리고 2019년 1월부터는 감사선교교회의 사역으로 매주일 12시30분 시티 도서관 앞에서 주일 2부 거리예배로 청년들과 함께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2) 상담센터를 통한 전도사역입니다.
성경적인 신약교회를 추구하는 가정교회를 시작하게 되었고, 2021년 올해를 전도에 집중하는 해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전도교재 중의 하나가 상담교재입니다. 이 교재를 나누면서 많은 한인들이(전도대상자들) 마음의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상담센터를 통해 관계전도하는 사역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 소개
개인적으로는 전도에 탁월하셨던 예수님처럼 목사인 저부터 탁월한 관계전도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쇼핑몰을 다니면서 전도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풍선을 만들어주면서 부모들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쉽진 않지만 열매가 있습니다.
교회적으로는 성경적인 신약교회, 가정교회를 통해 주님 주신 복음전파와 영혼구원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제목
1) 홈리스 사역에 은혜 베푸소서.
3) 쇼핑몰 전도에 풍성한 열매 맺게 하소서.
4) 상담센터 사역에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있게 하소서.
5) 교회의 성장과 영적 부흥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