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생경험 소개
저는, 1963년 시골의 전통적인 불교/유교 가정의 5남매중 둘째로 태어 났습니다. 대학 1학년(1982년), 주님을 영접하기 전까지는, 하나님과는 완전히 무관한 생활을 하고 지냈습니다. 저는 가난한, 아주 가난한 삶을 어릴 적 부터 보내야 했었습니다. 초등학교때 부터 신문배달과 연탄배달을 하며, 옛날 용두산 공원에서 빈병과 깡통을 줍든, 때론 가게의 빵을 훔쳐 먹든, 소풍가는 날을 가장 싫어 하던, 정규 중학교를 갈 수 없어서 검정고시를 통해서 고등학교에 입학해야 했던, 그래서 크면 꼭 부자가 되어야 겠다고 오기로 살아 가던,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한 영혼이었습니다 (왠지 지난 날들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가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
그래서인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님에 대해, 사회에 대해 적대적인 불만이나 감정을 품고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의 마음 속에는 매일과 같이, 「나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라는 소박한 의문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그 의문은 간단하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았고, 어느새 대학생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무엇보다도 저의 근본적인 의문을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생각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첫 구원의 사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대학선배를 통해, 처음으로 복음을 듣게 해 주셨습니다. 사실 선배를 만난 그 날, 아마 입학식 다음 날이었는데, 저는 불교학생연구회에 가입하기 위해서, 그 근처 벤치에 앉아 그 소박한 질문을 되새기며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흔쾌히 복음을 듣고, 그 선배로부터 한 권의 책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한영 기드온 신약 성서였습니다. 저는 그 때부터 그 성서를 밤낮으로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 후 저는 선배들과의 정규적이고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생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14장6절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신명기 33장29절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는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토록 고민하던 그 의문이 안개와 같이 걷히고, 새로운 하나님의 세계,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대학 3학년(1984년) 때 처음으로 일본어를 공부하며, 선교의 꿈을 꾼 지 9년, 군 제대 후 1993년 일본 후꾸오까로 파송된 지 햇수로 28년, 참으로 빠르게도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며, 온전한 마음으로 우리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마,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오기로 이 세상을 살아 갔겠지요. 성공했으면, 주님 없는 세상사람들과 같이 쾌락을 즐기며,
자기만을 위해 살았겠지요. 우리 선하신 주님은, 이러한 저에게 구원의 선물과 함께 선교의 특권을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캠퍼스기간 중의 신앙생활관 훈련, 믿음의 선배들과의 교제, 전도와 양육의 훈련, 군 기간 중의 연단등을 거쳐서, 주님께서는 일본의 선교현장으로 저를 보내셨습니다.
2) 사역 (목회/선교) 소명 소개
대학생활과 함께 당시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신앙훈련속에서, 조금씩,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자신의 장래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공부하며, 구원의 감격을 생각할 때, 나 자신을 위한 인생 설계는 도저히 고려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가정에서 어렵게 진학한 대학(5 남매중 유일하게 대학진학), 그 후의 직장에 대한 꿈과, 가난한 삶을 살아 오신 부모님의 기대를 거절하고,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선교의 부르심을 받아 들이기에는 많은 기도와 눈물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느 아침, 경건의 시간 중, 주님께서 조용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4-15).
그 후 대학 3 학년 때 처음으로 일본어를 공부하며 선교의 꿈을 꾼 지 9 년(1993 년), 하나님께서는 저를 일본 후쿠오카로 인도하셨습니다. 당시, 아프리카 선교를 꿈꾸던 지금의 아내를, 하나님께서는, 믿음안에서 일본 선교를 할 수 있도록 저희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내가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아프리카가 아니라 일본에 자신을 인도해 주셨다고, 자주 말하곤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에 감사드리며, 나의 사명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우리의 사명으로 일본선교를 감당하도록 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3) 현재 사역소개
1993 년 일본선교시작 이후, 대학생선교를 중심으로 선교를 해왔습니다. 자연스럽게 결신자들이 교제안에서 가정을 이룸을 통해, 다음 세 가지에 사역의 포커스를 맟추어 감당하고 있습니다. 1.교회중심의 사역, 2.경건한 가정형성의 사역, 3.청년/대학생 사역
1. 교회중심의 사역: 현재는 일본 목회자(78 세)와 동역하며, 일본인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매주 평균 20 여명의 출석 교인 (코로나 19 로 인해 온라인 라이브예배로 1 년반 지속 중)이 있는데, 점차 고령화를 맞이 하고 있습니다. 현재 함께 하는 형제들 속에서 바톤을 이어 받아 새롭게 교회를 젊게 갱신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니시지마형제(48 세)가 잘 준비되어서 그 바톤을 이어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2. 경건한 가정형성의 사역: 직장과 자녀 교육등의 현실적 문제를 중심으로 각 가정을 돌보며, 흩어진 각 처소에서 경건한 가정을 세울수 있도록 기도하며 돕고 있습니다. 특히, 니시지마형제 가정을 비롯하여, 비슷한 연령대의 네 가정을 개인적으로 집중하고 있습니다.
3. 청년/대학생 사역: 현재 제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큐슈공대)과, 돕는 형제(야스무라, 쿠마모토대학)가 재직중인 대학에서의 사역을 통해서 학생들을 접촉하고 있는데, 결신자와 함께 장래의 일꾼감들이 나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가정를 오픈해서 먹이고, 함께하는 긴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4) 앞으로의 계획 소개
7년후 교수정년까지, 일본 현지인 목회자 중심의 사역으로, 사역전반을 위임하고, 남은 생애를 후진 양성과 순회전도자로서의 삶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현재, 1만개 정도의 교회에 정식 목회자가 없는 교회, 고령화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교회등, 몸이 건강하기만 하면 섬길 곳은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일본에서 뼈를 뭍는 날까지, 일본기독교의 조선/한국의 발자취의 연구와 함께 지루할 날은 없을 것 같습니다. ><
5) 기도제목
1. 허종훈/최우선 선교사부부가, 주님과 깊이있는 동행의 삶을 누리며, 자기개발에 늘 깨어 있으며, 건강관리에도 지혜를 주셔서, 영육간에 강건함으로 주님과 사람들을 섬길 수 있도록.
2. 겸손한 마음으로 늘 일본과 일본인을 배우며, 일본인에게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그러나, 본질이 변하지 않는 신앙과 교회의 모델을 세우는 일에 쓰임받도록.
3. 두 자녀(찬영:일본 직장인, 대성:일본 대학원생)가 주님의 귀한 그릇으로 준비되고, 일본선교에 쓰임받도록.
4. 함께 동역하는 일본인 목회자와, 섬기는 교회(무나카타 메구미교회), 돕고 있는 다음 세대의 형제자매들이 주님 안에서 하나되어 일본선교에 쓰임받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