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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복의 종교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마 올 한해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가장 많이 주고받는 인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하면서 서로에게 복을 빌어주는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 복이라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기독교는 사실 복의 종교이다. 그럼에도 교회가 기복 종교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을 많이 듣는다. 물론 교회가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나 기독인들이 마땅히 가져야할 도덕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기적인 복만을 구하는 왜곡된 모습을 보였기에 나오는 비판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겸손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근본적으로 복의 종교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복을 약속하셨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복을 얻을 것임이라” (창12:1,2)
그 외에도 성경에 보면 복이라는 단어가 헤아릴 수 없게 많이 나온다. 기독교를 특징짓는 수 많은 단어와 표현들이 있지만 아마 복이라는 말처럼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단어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 많은 기독인들이 복을 우리 신앙 생활의 부산물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결코 아니다. 복은 우리 기독교의 본질이자 핵심이다. 기독교는 분명코 복의 종교이다.
복에 대한 잘못된 견해가 있다
그런데 기독교의 복에 대하여 두 가지 종류의 오해가 존재한다. 첫째,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영적인 것으로 제한하는 잘못이 그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다분히 성경적이지 않은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즉, 영혼과 육체, 초자연적인 것과 물질 세계의 것, 이생과 내생, 교회 안과 교회 밖의 세상을 분리하여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는 하나님의 복의 영역으로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복과 상관이 없는 영역으로 간주하려는 태도이다. 오직 영혼, 초자연적인 것, 내생, 그리고 교회 안에만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고 여긴다. 이런 생각에서는 육체, 물질, 이생, 그리고 세상은 어떻게 되든지 관심이 없다. 더 나아가 이런 눈에 보이는 것들을 부인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의 표준으로 결론 짓는다. 이런 태도에서는 오직 죽어서 천당가는 것, 교회가 성장하는 것, 초자연적인 경험을 하는 것 등 만을 복으로 여길 것이다.
이와 더불어 두번째 오해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이와 반대되는 방법과 영역에서 구하는 태도이다. 즉 하나님의 축복을 물질의 축복, 이생 속에서의 출세, 세상 속에서의 영광으로 여긴다. 이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오직 이런 복들을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런 생각 속에서는 세상, 물질, 육체 속에서의 복받는 것을 신앙의 표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 외에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어떻게든 사업이 잘되는 것, 자녀가 잘 되는 것, 건강한 것과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 만을 복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러니컬 한 것은 위의 두 가지 태도가 서로 반대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을 부인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이 세상에서 복 받는 것을 세속적인 방식으로 추구한다.
참된 복은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로 사는 것이다
그러면 기독교가 복의 종교라고 할 때에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기독교에서의 진정한 복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하나님의 뜻을 누리는 복이다. 위에 언급한 첫번째 태도에 대하여 말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는 이원론적인 모습을 갖지 않고 모든 영역 속에서 하나님의 복을 구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육체를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고 초자연적인 영역 뿐만 아니라 물질 세계를 지으시고 관심을 가지시며 돌보시는 하나님이시다. 내생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이생의 주관자이시고 교회 뿐만 아니라 세상 역시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두번째 태도에 대하여 하나님은 이 모든 영역 속에서 우리를 복주시되 죄악되고 세속적인 삶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원리로 우리가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육체와 이생, 그리고 물질과 세상을 긍정하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삶의 원리를 따라서 살아가기를 구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진정한 복이다. 이런 복의 모습은 추상적이지 않고 일상적이며 구체적이다. 우리가 건강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삶을 추구하는 복, 육체적으로는 운동을 하고 건강을 잘 관리하는 복, 가족 가운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용서와 사랑과 격려를 추구하고 자녀들이 자신들의 적성에 맞는 분야를 선택하여 성실하게 노력하고 자신의 삶을 잘 관리하며 남을 돕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복이다. 우리 교회 가운데 화목하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세상 속에서 자기의 삶의 분야에서 섬기는 사람으로 설수 있게 세워주는 복, 우리가 세상 속에서 일하는 분야에서 남을 경쟁 속에서 이기고 짓누르기보다는 함께 윈윈할 수 있게 서로를 돕고 세워주고 기다려주고 함께 가는 복이다. 그리하여 얼마동안 이 세상에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생 속에서의 삶을 하루 하루 감사함으로 살아가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존재하기를 다하는 날 영광의 하나님과 영영히 함께하는 복… 이런 것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이 아닐까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한해가 되자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절대로 잊어버려서도 변질시켜서도 안되는 진리이다. 예수님께서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첫번째로 복에 대한 설교를 하셨다.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복이 우리 가운데 어떻게 임하는지를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의 가장 큰 관심은 우리가 진정으로 복을 누리는 것이었다. 기독교가 복의 종교라는 것을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정말로 기뻐하고 자랑해야할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복 주시는 것이다. 이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올 한해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가득 넘치시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